국민연금, 국민의 노후자금 630조가 위험하다
국민의 대다수가 가입되어있는 국민연금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내년이면 700조원, 금방 1,000조원이 됩니다. 이렇게 큰 규모로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중요한 곳인데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습니다. 내부 문제에 정권의 입김까지 가세를 하니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출신으로 자산운용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자신의 ‘친정’이기도 한 기금운용본부의 최근 처지에 혀를 끌끌 찼습니다. 기금운용본부장은 인선 과정의 잡음이 나오며 1년 가까이 공석이고, 그 밑에서 투자를 책임져야 할 주요 보직도 줄줄이 비어있다.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기 위해 적정비율과 합병 시너지 산정 시 내부 직원들이 가담해 치밀하게 조작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국민들로부터의 신뢰는 바닥으로 추락한 상태. 지난해 전주로 본사를 옮기면서 이어지던 인력 이탈은 최근 이런 분위기와 맞물려 더 가속화할 거란 우려까지 나온다. A씨는 “총체적 난국”이라고 했습니다.
구멍 난 자리, 곪아가는 업무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강면욱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일신 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게 작년 7월17일. 국민연금공단은 후임자 선정을 차일피일 미루다 올 4월에서야 공모를 시작해 놓고도 3개월 가까이 질질 끌다 “적임자가 없다”며 지난 5일 재공모에 들어갔다. 서류 심사, 평판 조사, 면접 심사, 인사 검증 등 거쳐야 할 단계를 감안하면 아무리 빨리 진행된다고 해도 앞으로 2, 3개월은 공백이 더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뿐이 아니다. 지난해 2월부터 해외대체실장은 1년 5개월째 공석이고,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난 채준규 주식운용실장은 최근 해임됐다. 설상가상으로 본부장 직무대행을 해 오던 조인식 해외증권실장도 사의를 밝혔다. 운용과 관련한 주요 책임을 맡은 4자리가 공석인 채 겸직이나 직무대행 등 ‘땜질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안으로는 이미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게 기금운용본부 출신 증권사 임원 B씨의 말이다. 그는 “주식이나 채권 투자가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교적 큰 문제 없이 돌아가는 반면 해외대체투자는 오로지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하는데, 1년 반이나 공석이다 보니 제대로 안 돌아간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찬성과 관련한 특검 수사는 물론 외부와 내부 감사 등이 계속 이어지면서 추후 책임이 돌아올 수 있는 적극적인 신규투자 결정을 하지 않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연금학회 회장, 기금운용평가단장 등을 지낸 연금 전문가 신성환 전 금융연구원장(홍익대 교수) 역시 “운용의 큰 틀을 정하는 굵직한 결정은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하지만 실제 집행을 잘 하는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면서 “본부 내부가 혼란스러우면 내부통제시스템이 허술해지고, 시스템보다 네트워크가 중요한 ‘대체투자’ 부문에 구멍이 날 위험마저 생긴다”고 지적했습니다.
추락하는 직원 사기, “남아 있으면 루저” 자조
내부 감사를 통해 재차 확인된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의 수치 조작은 ‘나라를 위한 일’이라며 돈보다 명예나 공익을 좇아왔던 상당수 직원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줬다. 이번에 해임 조치된 채준규 자산운용실장은 적정합병비율을 삼성 측 제시안에 맞추도록 “삼성바이로직스 지분가치를 인위적으로 확 키워보라”고 직원들에게 지시했고, 아예 합병 시너지가 2조원이라는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세부 내용을 짜맞추기까지 했다. 기금운용본부 한 직원은 “불미스러운 일들이 이어지며 그간 지켜온 자존감이 추락했다”고 말했습니다.
정권을 가리지 않고 되풀이되는 인사 잡음 역시 기금운용본부의 위상을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본부장 공모에서 최종 3인 중 심사에서 최고점을 받았지만 인사검증에서 탈락한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가 언론 인터뷰에서 “공모 과정에서 장하성 실장이 지원하라는 전화를 했고,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사실상 내정된 듯이 말했다”고 밝혀 청와대의 인사 개입설이 제기된 상태. 청와대는 “단순 권유였을 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직원들로서는 뒤숭숭할 수밖에 없다. A씨는 “여태까지 기금운용본부장 인선에 정부 입김이 없었던 적이 없었지만 이번 정부는 다를 것이라 기대했는데 실망했다는 소리도 들린다”고 했고, B씨는 “역대 정부 모두 국민연금 기금운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뒷전이고 본부장 자리를 마치 ‘정권의 전리품’처럼 생각해 왔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국민 노후자금 630조원을 굴리는 운용 인력들의 이탈도 꼬리를 물고 있다. 지난해 전주 이전을 앞두고 2016년 30명, 2017년 27명이 사표를 썼고, 올해도 6월말까지 20여명이 기금운용본부의 등을 졌다. 동종업계에 비해 박한 급여와 본사 전주 이전 탓에 빈자리를 메워줄 인력을 찾기는 더더욱 어렵다. 6월말 현재 정원 274명 중 32명을 채우지 못한 상태다. 이번에 기금운용위원회가 직원 성과급을 기본급의 58.3%로 예년의 2배 이상으로 책정하는 등 사기를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한 직원은 “동료들끼리 ‘이제 남아 있으면 루저(loser)’라는 우스개 소리도 한다”며 씁쓸해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보다 근본적으로 독립성을 보장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장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이달로 예정된 상황에서 투자 결정이나 의결권 행사에 있어 외압에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의 구창우 사무국장은 “관행적으로 이루어졌던 정부의 공단과 기금운용에 대한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고, 신 전 원장은 “기금을 여러 개로 쪼개 각각 최고투자책임자(CIO)를 두어 서로 경쟁을 시키는 북유럽 방식 등 독립성을 보장할 제도 개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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